‘그린 북(Green Book)’은 19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그의 백인 운전기사 사이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며 형성되는 우정을 통해, 인간 존엄성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따뜻하게 조명한다. 2018년 개봉 당시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이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구성 및 배경
‘그린 북’이라는 제목은 실제 존재했던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에서 따왔다. 이는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발간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로, 인종차별로부터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숙소와 식당 정보를 담고 있었다. 영화는 바로 이 ‘그린 북’을 손에 쥐고 미국 남부 투어를 시작한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기사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962년 미국, 여전히 남부 지역은 짙은 인종차별의 그림자에 갇혀 있다. 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영화는 두 인물의 만남을 통해 당대의 사회 구조, 인종 인식, 문화적 편견 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배경은 단순한 시대 설정이 아니라, 두 사람의 갈등과 성장의 뿌리이며, 결국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변화’와 ‘존중’이 싹트는 토양이 된다.
줄거리
주인공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뉴욕 브롱크스 출신의 터프하고 솔직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나이트클럽 보안요원으로 일하던 그는 클럽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고, 새롭게 구직 활동에 나선다. 그러던 중,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라는 이름의 흑인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운전기사 겸 수행원 자리를 제안받는다.
돈 셜리는 카네기 홀 위층에 위치한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며, 세련된 말투와 품위 있는 태도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미국 남부로 순회 공연을 떠날 예정이었고, 인종차별이 극심한 그 지역을 돌며 안전하게 이동하고 문제를 해결해 줄 백인 운전기사가 필요했다. 전혀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남부 투어를 떠난다.
여행 초기,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충돌한다. 토니는 교양 없고 직설적인 반면, 돈은 예술적이고 정중하며 완벽주의적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티격태격하지만, 점차 서로의 고통과 진심을 마주하게 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남부 지역에서 돈은 명망 높은 연주자로 극진한 환대를 받지만, 무대 밖에서는 여전히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사도, 화장실도 차별을 받는다. 토니는 점점 이런 상황에 분노하며 돈을 보호하고,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된다.
돈 역시 토니를 통해 단순한 백인 노동자라고만 생각했던 편견을 깨고, 그가 가진 따뜻함과 가족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게 된다. 여정을 통해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마침내 남부 공연을 마친 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며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두 사람은 실제로 평생 친구로 지냈다고 전해진다.
교훈과 메시지
‘그린 북’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해와 존중이다. 서로 다른 문화, 인종, 계층에 속한 두 인물이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과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토니는 처음에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 뚜렷했지만, 여행을 통해 돈 셜리의 내면을 보고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며 자신의 시선을 바꾸게 된다. 돈 셜리 역시 토니를 통해 사회적 지위나 교양이 전부가 아님을 배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영화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돈 셜리는 흑인이지만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며 백인 사회에서 활동하는 인물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안고 있다. 그는 흑인 커뮤니티에서도 ‘너무 백인스럽다’는 말을 듣고, 백인 사회에서는 여전히 차별받는다. 영화는 이런 정체성의 혼란을 통해 인간이 사회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영화는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잔잔하지만 묵직한 감정선, 인물 간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변화의 흐름, 그리고 감동적인 마무리는 관객들에게 단순한 영화 이상의 울림을 준다. '그린 북'은 결국 우리에게 말한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변할 수 있으며, 그 변화는 작은 이해와 존중에서 시작된다고.
결론
‘그린 북’은 과거의 차별적 현실을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정성 있게 그려낸 감동 실화다. 두 사람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차이를 넘어선 우정, 감정, 성장의 과정을 함께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안의 편견을 돌아보게 되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인종, 계층, 문화라는 경계를 넘어 진심으로 연결된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볍게 시작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대화의 시작점이 되어줄 수 있다.